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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런두런

별모양의 병

꽃사슴 2021. 8. 25. 15:12

별모양의 병

 

 

별모양의 병

 

집에서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면 아주 작고 아담한 가게가 있다. 그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신기한 것들이 진열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오늘은 어떤 물건이 들어와 있을까 하는 기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곳은 작지만 강한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이 피어나는 곳이다.

 

아담한 가게는 오직 비가 오는 날에만 문을 연다.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낮과 밤에 맞는 우산을 쓰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낮에 가게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빨간 우산을, 밤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파란 우산을 쓰고 가야만 출입이 가능했다.

 

낮에 파란 우산을 쓰거나 밤에 빨간 우산을 쓰면 들어갈 수 없었고 그외의 다른 색깔의 우산은 출입이 불가능했다. 이런 특이한 조건을 내걸은 아담한 가게는 마을 사람들에게 탐탁치 않게 여겨졌지만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이 너무나 화려하고 기묘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기에 가게는 주변 사람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를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여름 향기가 뒤섞인 가을비가 내리는 어느 날의 오후, 아담한 가게에 갈 일이 생겨 나는 급히 빨간 우산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기에 신발 앞쪽이 비에 젖어서 찝찝했지만 다시 돌아가기엔 시간이 없어 불편함을 참고 그냥 가게로 향하기로 했다.

 

가게에 도착한 후 가게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았다. 사야할 물건을 급히 챙기고 나서는데 하얀 별모양이 눈에 들어와 걸음을 멈췄다. 시선을 끌어당긴 별모양을 가까이 가서 보니 하얀 별이 달린 작은 병이 하나 진열되어 있었다. 병 안에는 색깔이 다양한 동그란 무언가가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이곳은 특별하고 기묘한 물건이 아니면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생각나 호기심에 병을 하나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가게 주인은 별모양의 병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 놓자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기묘한 미소로 말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자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이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날 밤 10시. 온종일 내리는 비의 무게를 감당하며 고된 하루를 버텨온 우산을 현관문 옆에 접어 놓은 후 샤워를 하고 미룬 저녁밥을 먹고서 가방 안에 넣어둔 별모양의 병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소파에 앉아 병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고 요상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나는 이런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쉰 후 병뚜껑을 열자 안에서 달콤한 향과 약간의 흙 냄새가 흘러나왔다. 다양한 색깔 중에서 나는 빨간색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물었다. 입안에서 그것이 사르르 녹으며 달콤한 맛과 흙맛이 뒤섞여 났다. 거의 다 녹아 마지막 남은 것을 깨물어 먹을 때쯤,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앞이 빙글빙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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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의자, 냉장고, 소파, TV, 침대 등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춤을 추었다. 닫혀있는 방문을 열지 않은 채로 통과했고 소파를 보면 음악이 들려오며 냉장고 문을 열면 땀이 났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출렁이는 파도처럼 움직였고 천장에서는 별이, 바닥에서는 꽃이 피어났다.

 

순간 눈앞에서 하얀 무언가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정신없이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 하얀 물체를 따라가자 빙글빙글 도는 세계 속에서 하얀 물체가 나를 향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오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뒷걸음치지 않고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 걸음 한 걸음 눈앞에 그것이 다가오면서 알 수 없는 기묘한 물체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그것이 눈앞에 걸음을 멈춰선 순간 기이한 존재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토끼였다.

 

생을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흰토끼가 눈앞에서, 집안에서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흰토끼를 보자 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른손을 들어 토끼를 잡으려는 순간 토끼는 흰색의 작은 몸을 뒤틀며 재빨리 동쪽 방으로 도망갔다.

 

세상이 도는 건지 내가 도는 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공간 속에서 눈앞을 어지럽히는 기묘한 토끼를 잡을 때쯤 땅에서부터 무언가가 솟구쳐 올랐고 순간 알 수 없는 무한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영원한 편안함과 포근함 속에 기대어 몸을 맡긴 채로 빙글빙글 도는 집안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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