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인형 '루시'
한 소녀가 바깥으로 나왔다. 현관문을 열고 나온 후 소녀는 문 앞에 서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빙글빙글. 살짝 열려있는 문 사이로 짙은 향냄새가 풍겨왔다. 절에서 날 법한 향이 은은하게 바깥으로 퍼져 나왔다.
예닐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는 품에 작은 곰인형을 하나 안고서 총총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날씨가 화창하고 좋아서 그런지 소녀의 마음 또한 푸른 하늘처럼 맑고 밝은 듯했다.
귀여운 곰인형을 안고서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곰인형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 같았다.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곰인형에 대해 물어보자 곰인형의 이름은 '루니' 라고 했다. 인형에 대해 물어보자 아이는 술술 자랑하듯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빠가 외국에 나가서 선물로 사다준 인형이라며 소중히 아끼는 듯 곰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예쁜여자 인형을 하나 선물로 사주었다. 빨간머리 앤처럼 붉은 머리에 사슴처럼 영롱한 눈망울이 빛나는 예쁜인형이었는데 아이는 곰인형과는 또 다른 모습을 한 인형을 받으니 기분이 무척 좋은지 깡총깡총 뛰며 기뻐했다. 아이에게 새로 선물 받은 인형의 이름은 어떻게 지을 것인지를 묻자 아이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아이는 곰인형의 이름과 비슷하게 새 인형의 이름을 '루시'로 할 거라고 말했다. 뜨거운 햇살이 인형을 비추어 태양빛을 담은 듯 인형의 입술이 붉게 빛났다. 아이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생겨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진 듯 두 인형을 양 손에 들고서 총총 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들에 피어난 꽃들 사이로 가을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여름 향기가 아직 머물고 있는 가을 바람인 것 같아 머릿속에 지난 여름날의 추억이 뒤섞이며 떠올랐다. 가을 햇살이 비추는 길을 천천히 걸어가다 오른쪽으로 시선이 갔는데 줄줄이 늘어선 집들을 보니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소녀가 사는 집을 돌아보니 소녀는 창문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길에 서 있는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소녀는 한 손을 흔들며 내게 인사를 했다.
불이 켜져 있는 집들 가운데 빨간 지붕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 입구에 다다르자 문이 열렸고 안에서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한 명은 빨간색, 한 명은 파란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반기며 내게 다가왔다. 다가오는 여자의 손을 잡은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눈 앞에 수많은 계단이 있다. 인형을 받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지금 이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도 예전의 삶을 완전히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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